💡발해는 왜 망했는가?
발해는 왜 망했는가? 백두산 화산 폭발설을 파헤쳐보다
역사 속에는 수많은 나라들이 흥망성쇠를 겪어왔습니다. 그 중에서도 발해의 멸망은 유독 ‘갑작스럽다’는 인상을 남깁니다. 그래서일까요? 많은 사람들이 백두산 화산 폭발을 그 원인으로 지목하곤 합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는 정말 사실일까요? 단지 “화산이 터졌다”는 이유로 강력한 국가가 무너질 수 있을까요?
오늘은 이 주제를 중심으로, 과학적 근거, 역사적 기록, 그리고 당시 국제 정세까지 함께 살펴보며 발해 멸망의 진실에 다가가 보고자 합니다.
백두산 화산 폭발, 실제로 있었는가?
2016년, 국제 연구진은 백두산 인근의 화산암을 분석해 실제 화산 폭발이 있었고, 그 규모가 엄청났음을 밝혀냈습니다. 분석 결과에 따르면, 백두산에서 분출된 황(Sulfur)의 양이 1815년 인도네시아 탐보라 화산보다 많았다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참고로 탐보라 화산 폭발은 인류 역사상 가장 큰 화산폭발 중 하나이며, 전 세계 기후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런데... 그 시기가 문제였다
발해는 926년에 멸망했습니다. 그렇다면 백두산 폭발이 그 전에 일어나야 인과관계가 성립할 텐데요. 문제는 2017년의 과학적 연구 결과, 백두산의 대폭발 시점이 946년 가을~겨울, 즉 발해 멸망 이후 20년이나 지난 시점이었다는 것입니다.
946년 폭발의 흔적들
- 개성에서 천둥소리가 들렸다는 기록
- 일본 나라현에서 하얀 재가 떨어졌다는 기록
- 이 모두 946년 화산 폭발과 일치
그렇다면 발해는 왜 망했는가?
이제 초점을 바꿔 발해의 멸망 원인을 더 넓게 살펴봐야 합니다. 화산 폭발 말고도 당시 발해가 처해 있던 외교적 고립, 주변 열강과의 관계, 그리고 내부 정치 혼란 등 다양한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거란 요나라의 부상
- 야율아보기가 이끄는 거란은 916년 요나라 건국
- 몽골 지역 통합 후, 발해를 공격할 수 있을 만큼의 세력 형성
- 결국 925년 말, 발해에 대한 본격적인 침공 시작
발해의 내부 사정
- 10대 왕 이후 왕위 계승이 불분명해짐
- 일본과의 외교 중단
- 당나라와 신라 사이에서의 외교적 불리함
이러한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얽히며 발해가 쇠약해진 상황에서, 거란의 침공이 치명타가 되었던 것입니다.
다시 생각해보는 백두산 화산설
백두산 폭발이 직접적인 멸망 원인은 아니었다는 것이 최근 연구들의 결론입니다. 다만, 946년의 대폭발 이전에 소규모 전조 현상이 있었다면, 발해의 국력 약화에 영향을 줬을 가능성은 열려 있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건, 화산 하나로 나라가 무너졌다고 단정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복잡한 외교, 정치, 군사 요인들이 맞물렸던 결과라는 점에서, 우리는 좀 더 입체적으로 역사를 바라봐야 하지 않을까요?
이후 발해의 멸망을 둘러싼 거란의 침공, 국제 정세의 격변, 발해 왕실의 약화 등에 대한 이야기는 더 많은 사료와 함께 다음 편에서 계속 이어집니다.